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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기아해방에 큰 기여 녹색혁명의 기원, 앉은뱅이밀. 그 유전정보 전파경로와 역사적 흐름을 살펴본다.

우리밀세상 0 1,704 2018.07.30 18:18

세계 기아해방에 큰 기여 녹색혁명의 기원,  앉은뱅이밀.


유전정보 전파경로 역사적 흐름을 살펴본다.

 

앉은뱅이 밀에 대한 세상의 관심이 참 높다. 이에 대한 관심은 우리 고유종자 토종이란 이해와 함께 세계 기아 해방에 큰 기여를 한 키작은 밀, 소노라의 조상이 바로 앉은뱅이 밀이라는 것에 있다. 이에 우리 고유 토종종자, 앉은뱅이밀이 어떤 경로에서 소노라까지 이어졌는지를 관련 자료와 문헌들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구글에서 키작은 밀(semi-draft wheat) 검색은 이와 관련한 여러 내용이 찾아진다. 19세기 영국 밀밭 그림과 함께 전하는 관련 글은 오늘날 키작은 밀과 옛날 밀의 차이를 확연히 살피게 해 준다. 오늘날 허리 춤 정도에 그치는 밀이 당시는 사람 키를 족히 넘는 모습이다.

 

이 키큰 밀을 작게 해 바람에 쓰러지지 않게 하고, 비료 효율도 높였다. 더불어 광합성 효율을 높이며, 생산성을 크게 증가시키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새롭게 개발한 것이 키작은 밀이며, 이전 밀에 비해 탁월한 생산성 그리고 내병성까지 커 현재 세계 밀의 주류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구글에서 찾은 몇몇 자료에서 주목할 점은 이 키작은 밀 활용이 우리에게 익숙한 1970년 노벨평화상 수상의 미국 블러그 박사의 소노라 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 이전 먼저 이탈리아로 흘러갔고, 이후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체코슬로바키아, 러시아 등지에서 널리 활용되어 나름의 성과를 거둔다. 미국으로 전파는 그 보다 한참 이후의 일이다.  

 

그렇지만 두 경로 모두 그 출발점은 우리나라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관련 글은 키작은 밀의 기원을 3~4세기 우리나라로 적으면서 사람의 손이 아닌 자연선택, 자연 돌연변이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나라의 이 키작은 밀이 16세기 임진왜란을 통해 일본으로 건너갔고, 이후 19세기에는 일본 밀의 중심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다시 세계로 퍼져 결국 우리나라 밀이 오늘날 세계 키작은 밀의 조상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19세기 이탈리아를 통해 유럽으로 먼저 전파

 

우리나라 키작은 밀 유전자의 유럽으로의 전파는 19세기 일본 토종밀 아카고무기에 의한 것이다. 이것이 20세기 유럽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이탈리아 밀 육종가 나자레노 스트렘펠리(Nazareno Strampelli)가 이 밀과 이탈리아 밀 간의 육종을 통해 1913년 쓰러짐에 강한 밀을 새롭게 개발했다. 이후 1918년까지 많은 키작은 밀이 개발되어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등의 남미에서 길러졌다. 이후 계속된 잡종교배에 의해 산 파스토르(San Pastore)가 개발되어 이탈리아와 많은 나라에서 35년 이상 재배되었다.

 

이탈리아의 이 같은 노력은 뭇솔리니 통치시기 식량자급률 향상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이 노력 덕분으로 이탈리아는 1922~1939년 기간 곡물생산을 2배로 늘리는 성과와 함께 자급률을 크게 높였다.

 

이탈리아 개발 키작은 밀은 2차 세계대전 후인 1950년대 유고슬라비아로 옮겨가, 지역밀과 교잡육종을 통해 새로운 고생산성 밀 품종 개발로 이어진다. 그 결과 1ha 1.36톤 생산성이 5.21톤까지 늘어난다. 이웃한 헝가리, 불가리아, 루마니아 그리고 이전 체코슬로바키아도 유사한 성과를 올린다.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로 다시 구소련과 유럽으로 유입

 

한편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라의 키작은 밀 전파는 2차 세계대전 이전이나 동안의 일이다. 이 밀은 2차 세계대전 후 다시 유럽과 구소련으로 옮겨간다. 그리고 1959년 구소련에서 새로운 키작은 밀을 잉태시키며 다시금 유럽으로 확산되어 갔다.

 

미국으로 전파는 2차 세계대전 후,

유럽으로 전파 때와 다른 품종, 전혀 별개의 경로

 

키작은 밀은 전혀 독립된 경로를 통해 미국에도 이른다. 이 경로의 키작은 밀은 유럽으로 간 밀과 또 다른 것이었다.

 

미국으로 건너간 키작은 밀은 1932년 일본 육종가에 의해 개발된 노린(農林) 10호이다. 노린 10호는 일본 다루마(達磨)로 불리는 토종 키작은 밀과 미국 품종 간 교잡에 의해 생겨났다. 노린 10호 키는 단지 60~110cm에 불과했다.

 

이 노린 10호가 2차 세계대전 후 미군 진주시기 미국으로 건너갔고, 1952년 워싱턴 주립대학에서 당시 지배적인 밀 품종과 교잡을 거치게 된다. 그 결과 1960년대 후반 생산성 높은 밀 품종 탄생으로 이어진다.

 

1953년 이후 노먼 블러그 박사에 분양되어

소노라 등 키작은다비성 품종 개발

세계 녹색혁명형 농법의 완성으로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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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린 10호는 워싱턴 주립대학에서 노먼 블러그 박사에 의해 다시 발견되어 멕시코의 국제 옥수수 밀 연구소인 시미트(CIMMYT)로 옮겨간다. 여기서 멕시코 전통 품종과 교잡을 통해 새로운 여러 키작은 밀 개발을 가져오고, 그 결과가 멕시코 그리고 이후 인도, 파키스탄의 밀 자급 성과와 함께 녹색혁명으로 이어진다. 그 대표 품종이 소노라 64이며, 그 외 레르마 로조 64도 중요 녹색혁명형 품종으로 언급되고 있다.

시미트 밀 종자는 유럽 겨울밀과 교잡을 통한 밀 생산 향상에도 기여하게 된다. 이후 이탈리아 북부와 중앙 그리고 유럽 남부와 중앙 등지로 널리 확산된다.

 

그 결과 오늘날 세계 밀 대개에 시미트를 통해 생산한 녹색혁명형 종자가 쓰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이 우리나라 키작은 밀이었다는 것에서 오늘날 우리는 세계 밀의 조상을 앉은뱅이밀로 언급하게 된다.

 

한편 국내 서적 한국농업기술사(정민사, 1983)에도 앉은뱅이밀을 통한 반왜성유전자의 흐름을 비교적 상세히 적고 있다. 이 자료는 소노라의 조상 앉은뱅이밀의 일본으로 전파가 임진왜란 시기 또는 1904~1905년 일제의 한국토지조사시기 분양 2가지 가능성이 모두에서 찾고 있다. 그리고 다루마(達磨)는 앉은뱅이밀의 일본어 동의어로 그대로 개칭되었거나 순계분리를 통해 선발 육성했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결과적으로 앉은뱅이밀에서 다루마가 선발되었고, 이 달마와 미국 밀의 육종을 통해 플츠 다루마가 나왔고, 다시 이 플츠 다루마와 터키레드를 교잡해 나온 것이 노린 10호이다. 그리고 이 노린 10호가 시미트 연구소에서 소노라, 레르마 노조 등 여러 키작은 밀을 낳으면서 녹색혁명형 농법을 이루게 된다.

 

여기 소개하는 그림은 앉은뱅이밀에서 시미트연구소 키작은 밀 개발까지의 경로로 한국농업기술사 260쪽에서 옮겨온 것이다.

이 그림에 근거할 때 앉은뱅이밀은 소노라의 6대조 정도가 된다.


이 글의 참고자료는 다음 6개

 

한국농업기술사 1983, 정민사

https://honey-guide.com/2015/07/18/the-origins-of-semi-dwarf-wheat/

https://academic.oup.com/jhered/article/96/4/455/2187931

https://www.cimmyt.org/from-east-asia-to-south-asia-via-mexico-how-one-gene-changed-the-course-of-history/

https://link.springer.com/chapter/10.1007/978-4-431-55675-6_2

https://en.wikipedia.org/wiki/Norin_10_wh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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