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밀 자료 및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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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류연구 지난 기록 그리고 일본의 경험이 밀 포함 맥류연구인력 최소 43명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밀세상 0 812 2018.07.12 18:10

맥류연구 지난 기록 그리고 일본의 경험이 밀 포함 맥류연구인력 최소 43명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밀 산업은 내리막길에 있었지만, 밀 연구는 그나마 활발히 추진되던 때가 있었다. 1970년 후반에서 1980년 초반에 이르는 시기.

농촌진흥청에 맥류연구소가 신설되어 밀보리 연구를 활발히 이어가던 때이다. 이 당시 맥류 연구소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을 1983년 발간 김창철님의 한국농업기술사에서 살필 수 있어 옮겨와 본다.


연구인력의 변천을 보면 1906년부터 1945년까지 맥류육종사업을 담당한 연구원수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수원과 사리원에서 각각 1명 정도 관여한 것으로 보이며 보고서 내용으로 보아 사업량은 많지 않았다. 1947년 농사개량원에서 농사원으로 존속되었던 1962년까지는 맥류육종사업을 2명의 연구원이 전담하였으며 1962년부터 1977년까지는 작시와 영시를 합하여 1977년부터 현재까지는


43명의 연구원

이 사업을 전담하게 되어 명실 공히 전국의 맥류육종사업 및 재배시험을 계통적, 효율적으로 대행하여 많은 실적을 올리고 있다. 1945년 이후 맥류육종 및 재배시험을 담당한 관계자는 별표에서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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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김창철, 한국농업기술사, 정민사, 1983

 

위 내용은 1977년에서 1983년 기간 맥류 연구자가 국내 43명이었다고 한다. 1969년 생산량 기준 224,023톤 이후 계속 내리막 길 속에 있었고, 그리고 1984년 밀 수매 중단이 내려지는 시기에 이 같은 연구 인력이 밀을 포함한 맥류 연구에 몸을 담고 있었다. 오늘날 관점에서 크게 부족했지만 나름의 성과도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 내용을 보는 순간 불과 수명의 연구 인력을 둔 오늘이 너무나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맥류 연구에 대한 지난 기억은 오는 20229% 밀 자급실현 더 이상 구호가 아니기 위해 우리가 지금 당장 행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잘 말해준다.

 

일본의 경험 - 1970년대 초 4%대로 낮아졌던 밀 자급률을 12~15%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일본이 가장 크게 역점을 두고 행한 사업이 품종연구였다. 우리나라 어느 지역보다 따스한 큐슈지방에서 빵용밀 미나미노카오리 재배를 안정적으로 행하고 있는 것도 그 덕분이다.

 

오늘날 일본의 성과 전국 10여 곳 이상의 연구소에서 100명 이상의 상시 밀 연구자받침 한 결과 라는 점 깊이 새길 필요이다.

 

오는 20229.9% 밀 자급률 실현 목표 - 다시금 구호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이 같은 일본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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